글쓴이 : 임준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국장
2024년 9월 7일 많은 이들이 강남역 사거리에 모였다. ‘907 기후 정의 행진’ 집회를 위해 모인 이들은 ‘기후 정의’라는 새로운 세상을 요구하며 그 자리에 함께했다. ‘기후 정의’라는 단어는 많은 이들에게 낯설고 생경한 단어일 수 있다. 하지만 ‘기후 정의’라는 그 말이 수만 명의 사람을 거리로 불러냈다. 아마도 우리 사회가 공통으로 겪었고, 겪게 될 것으로 예견하는 현실이 그 단어를 체감하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후 돌봄』, (신지혜 등 공저, 산현글방, 2024)
이번에 소개할 책은 ‘기후 돌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바탕으로 여섯 사람의 연구자들이 쓴 글이다. 이 책은 2023년 가을 한신대 생태문명원과 모심과살림연구소가 공동 개최한 ‘기후위기 시대의 돌봄’이라는 포럼에 제출되었던 글을 보완하여 엮었다.
저자들은 ‘돌봄’이라는 말의 의미를 확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돌봄을 ‘기후위기’ 상황의 해결책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각자의 생각을 풀어내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 책이 공동 저자 각자의 이론이나 생각을 전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공동으로 작업한 ‘기후 돌봄 선언’을 책의 서문에 두었다는 사실이다. 서문이면서 어쩌면 책의 결론에 해당할 수 있는 이 선언은 참 재미있게도 다정다감하다.
저자들은 ‘돌봄’이라는 말이 가진 기존의 틀을 부수고 확장한다. ‘취약함’이 돌봄을 요청하는데 이 ‘취약함’이라는 것은 생물, 삶(life, living)의 기본 면모라고 말한다. 이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유지되기 위해 공기와 물, 햇볕과 바람을 비롯해 수많은 외부 혹은 타자와 연관 맺고 의존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그렇기에 돌봄은 보편적인 것이고,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인간을 넘어 비인간 존재들에게까지 이러한 돌봄이 확장된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저자들은 지역공동체를 통해 기후 돌봄의 실현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비인간 존재와의 관계 재구성을 통한 돌봄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탈성장을 이루기 위한 탈주의 방식으로서 도시농업과 같은 돌봄을 제시하고, 지역에서 시작하는 기후 돌봄의 정치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책의 마지막 장은 한살림생협의 생명운동이 그간 이러한 기후 돌봄의 한 사례로서 기능해왔다고 조망한다.
저자들은 기후위기가 이러한 돌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돌봄을 확장시킬 중요한 계기라고 말한다. 기후위기는 사실상 이러한 돌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후위기가 불러온 재난은 우리 모두를 취약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재난에 처한 우리가 생존을 위해 서로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있다. 저자들은 확장된 의미의 돌봄이라는 말 속에 포함된 상호의존이라는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 우리가 기후위기에 직면하게 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 그간 가져왔던 인식의 틀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4장 ‘인류세의 비인간 돌봄’에서 철학자 우석영은 심지어 인간이 만든 물건까지도 우리의 삶을 돌보고 함께하는 새로운 친족으로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석영은 옷을 예로 들면서 “실재로 내 몸에 딱 맞아서 더위나 추위로부터 나를 보호해주고, 동료들 사이에서 내 스타일/존재감을 살려주며, 내 심미적 감각에 흡족하고, 특정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반복해서 찾아 입게 되는 옷장 안의 그 물체들은 비록 인체의 그것과는 다른 원리에 따라 구성되어 있는 자이긴 해도 살가운 친구나 가족과 다를 바 없는 존재”(158쪽)라고 말한다. 이런 인식의 전환이 가져올 변화가 기후위기를 넘어설 새로운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렇게 기존 사회적 통념과 인식에 균열을 내는 과정을 통해 돌봄이라는 말이 기후위기의 치료제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후 돌봄’만 이야기하는 인문학자들의 책을 이 지면에 소개하는 이유는 기후위기 너머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소망과 상상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은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그걸 만들어가는 일 아닌가. 이것이 우리가 기후운동의 새로운 상상력 ‘돌봄’을 주목해보아야 할 이유다.
탈핵신문 2025년 1월 (129호)
